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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노조가 투쟁하는 100가지 이유 [2008.10.03 제729호] 한겨레21

YTN 노조가 투쟁하는 100가지 이유 [2008.10.03 제729호]
요즘 진짜 24시간을 사는 ‘24시간 뉴스채널’의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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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5일 아침 6시. 김정원(34·2001년 입사) YTN 촬영기자는 2년 만에 결혼식 예복을 꺼내입었다. 그가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날이었다.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 권석재 사무국장, 임장혁 돌발영상팀장, 우장균 정치부 기자…. 11명의 선후배들도 함께 조사를 받는다. 이유는 7월17일 주주총회에서 ‘날치기’로 구본홍 사장 임명안이 통과된 다음날부터 70일째 이어진 사장 출근저지 투쟁 때문이다. 혐의는 업무방해, 고소인은 회사다.

오후 1시 남대문경찰서 앞에선 만감이 교차했다. 사회부 촬영기자만 6년. 그에게 경찰서는 ‘집’이다. 눈 뜨면 경찰서로 가서 뉴스 화면에 나올 피의자들을 찍었다. 폭력사태로 구속된 김승연 전 한화그룹 회장, 세상을 뒤집어놨던 유영철 같은 살인범, 가짜 비아그라를 팔다 붙잡힌 사기범, 친구 엄마 카드를 훔쳐 명품을 사다 적발된 절도범…. 그러던 그가 이제는 ‘찍히는’ 몸이 됐다.


» 왼쪽부터 김정원 촬영기자, 우장균 기자(정치부), 황혜경 기자(사회부), 김정현 기자(뉴스 섭외 담당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박소정 기자(정치부), 김명우 앵커

체불임금을 출자하고 노조를 만들다

경찰 조사 대상자는 12명이지만, 남대문경찰서 앞에는 90명에 가까운 YTN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연차 휴가를 내고 지방에서 올라온 선배, 출입처를 비우고 달려온 동료들…. 출산예정일을 일주일 남겨둔 이승은 국제부 기자가 잔뜩 불러온 배를 안고 힘겹게 택시에서 내리는 모습도 보였다. ‘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이들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김정현(39·1997년 입사) 기자가 조금 늦게 남대문경찰서 앞에 도착했을 때는 노종면 위원장이 이런 말로 기자회견을 접고 있었다. “도도한 언론 민주화 역사는 구본홍씨와 그에 부역한 인사들을 죄인으로 기록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듣던 김 기자는 ‘그래, 이렇게 정권에 방송을 넘겨줄 수는 없지’라며 주먹을 다시 쥐었다.

기자가 되는 길은 어려웠다. 대학 시절 야학 활동을 하면서 사회적 약자들의 현실에 눈을 떴다. 기자가 돼서 이들의 현실을 알리고 싶었다. 기자 시험에선 줄줄이 떨어졌다. 한 대기업 입사에 합격한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본 YTN 입사시험에서 그는 꿈을 이뤘다. 입사 직후 회사는 외환위기를 정면으로 맞아 휘청거렸다. 방송사 초기 투자비는 엄청났다. 경력기자들을 높은 연봉에 ‘모셔’왔다. 케이블망의 보급은 늦었다. 출범 3년 만인 1997년 말 누적적자가 1천억원을 훌쩍 넘었다. 1998년 2월부터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방송은 해야 했다. 무일푼으로 취재를 다녔다. 당시 그의 담당 구역은 서울 종로. 종로·동대문·혜화경찰서 등 경찰서 6~7곳을 돌아야 했다. 택시 탈 일도 잦았다. ‘캡’(사회부 경찰팀장)과 함께하는 회식도 줄어들었다. 1998년 한 해만 88명이 회사를 떠났다. 그래도 남은 이들은 ‘24시간 뉴스 전문 채널을 지키겠다’고 뭉쳤다. 노동조합도 이때 생겼다. 회사의 존립 자체가 위기였던 YTN의 노조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긴급자금 투입 등을 요구하며 정부와 싸워야 했다. 조합원들이 다시 호주머니를 털었다. 체불임금의 50%인 32억5천만원을 우리사주로 출자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니 어느덧 주인의식이 훌쩍 자라있었다. 김정현 기자는 “형편이 어려웠지만 단 한 번도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며 “그렇게 지켜낸 회사인데 어떻게 이렇게 빼앗기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YTN 노조원들이 끝까지 싸우는 이유는 그런 회사의 생존 과정 속에서 살아남았고, 그 과정에서 회사와 방송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커왔기 때문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정치기자가 당 최고회의에 참여 못하고

그는 개인적인 부채감도 있었다고 했다. 89학번인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꼭 장학금을 받아야 했다. 학교에서 매일같이 열렸던 시국집회 현장을 지나쳐 도서관으로 향했다. ‘함께할 수 없다’는 부채감에 1학년을 마치고 군대로 갔다. 도피성이었다. “그때 학생운동에 참여하지 못했던 것이 요즘 계속 생각난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에 촛불을 켜고 YTN 앞으로 찾아오는 시민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것 때문에라도 호락호락하게 구본홍 사장, 대통령 언론특보 출신 사장을 받을 수는 없다.” 말을 맺은 김정현 기자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24시간 뉴스채널’ YTN의 기자들은 요즘 진짜 24시간을 산다. 출근저지 투쟁도 해야 하고, 뉴스 취재와 제작도 해야 한다. 박소정(30·2003년 입사) 정치부 기자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선진과 창조의 모임 등 야당 전반을 담당한다. 이전엔 아침 7시 국회로 출근했지만, 지금은 그 시간에 회사에 있어야 한다. 출근 장소는 서울 남대문로 본사 사옥 17층 임원실 건너편에 있는 회의실. 인터넷을 통해 아침 뉴스를 검색하며 김밥으로 간단한 끼니를 때운다. 오전 9시께 “구본홍씨가 올라올 것 같습니다. 다 같이 나갑시다”라는 노조 집행부의 외침이 들리면 곧바로 달려나간다. 동료 기자 20~30여 명과 함께 17층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사태가 종료되면, 즉 구본홍 사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오전 10~11시가 되면 택시를 타고 출입처로 간다. 오전 9시에 열리는 민주당 최고위원회 회의 등도 놓친다. 2~3시간 늦게 시작되는 정치부 기자의 하루는 두 배로 바빠진다. 회사와 출입처를 오가다 보니 택시비가 장난이 아니다. 몸은 더 지친다. 박소정 기자 등 YTN 기자들은 9월25일로 70일째 이런 출근저지 투쟁과 취재·제작을 동시에 해왔다.

<뉴스나이트>를 진행하는 김명우(34·2000년 입사) 앵커. 밤 10시에 시작되는 뉴스를 진행하므로 오후 5시에 출근해 뉴스가 끝나는 밤 12시에 퇴근하면 되지만, 요즘엔 아침 7시에 나온다. 구본홍 사장 출근 저지에 동참하기 위해서다. 새벽녘까지 잠도 오지 않아 만성 수면 부족이다. 9월22일 밤샘 야근을 한 청와대 출입 우장균(44·1995년 입사) 기자. 원래는 23일 아침 일찍 퇴근해야 하지만, 출근저지 투쟁에 함께하고 경찰 소환과 관련한 준비 모임에까지 참석한 뒤 퇴근했다. 점심 때가 훌쩍 넘어 있었다. 꼬박 30시간을 뜬눈으로 산 셈이다.

이렇게 피곤해도 투쟁을 멈출 수 없는 것은 ‘공정한 방송’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박소정 기자는 “지난해 대선·총선을 거치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방송이 편파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 고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한창 고소영 내각이다, 강부자 내각이다 말이 많을 때 관련 아이템을 보고해도 채택이 안 되더라고요. 다른 방송이 (비판적인 보도를) 3~4꼭지(보도편수를 말하는 방송계의 은어) 할 때 겨우 1꼭지 정도만 했죠. 그런 상황이 계속되다가,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섣부른 논평을 풍자한 <돌발영상>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홈페이지에서 삭제되는 상황이 왔죠. 그 일련의 과정을 겪다 보니, ‘대통령 선거캠프에서 언론특보를 지낸 이가 사장으로 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길까’라는 고민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죠. 우리는 막을 수밖에 없어요.” 외모는 가냘파 보이는데, 속은 단단한 기자였다.

» YTN 낙하산 사장 선임 반대 투쟁 일지

월급 결재만 사장실에서 하겠다는 사장

‘공정하지 않다’는 딱지가 방송에 붙으면 그 자체로 생존에 대한 위협이 된다는 의식도 YTN 구성원들을 단단하게 한다. 김명우 앵커는 앵커로 입사했지만 2003년 취재기자로 자원했다. 2005년 11월 황우석 사태가 터졌을 때 사회부에서 자체적으로 구성한 ‘줄기세포팀’에서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가 ‘진짜’임을 입증하는 보도를 했다.

“당시 보도국장이 황우석 교수와 친해 정보가 많았어요. 항상 타(방송)사보다 한 발짝 앞선 정보를 취재팀에 주는 거예요. 당시는 〈PD수첩〉이 방영되기 전이었고, 방영 이후에도 한참 동안 줄기세포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잖아요. 우리로서도 그랬고, 열심히 뛰었죠. 그러나 결국 진실은 달랐어요. 당시 보도국장의 잘못된 지시로 인해 이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등을 거치며 YTN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됐죠. 당시는 보도국장 한 명의 실수였다면, 이번에 구본홍 사장이 오는 문제는 방송 전체가 정권에 넘어가는 겁니다. 방송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는 겁니다.”

YTN 직원들은 구본홍 사장이 ‘낙하산 사장’이어서 반대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장감이 아니다’라는 판단도 한다고 했다. 회사 쪽으로부터 징계를 위한 인사위원회 회부와 형사고소라는 두 가지 ‘탄압’을 모두 당한 정유신(36·2000년 입사) 기자는 “사실 초반에 구본홍 사장설이 돌 때만 해도 문화방송 보도본부장, 경영본부장까지 지낸 인사이니 ‘능력은 있지 않겠냐’는 추측이 일부 있었지만, 실제 투쟁 과정에서 겪어본 결과 공정방송에 대한 의지도 없었고, 인품과 능력 모두 실망스런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구 사장은 8월25일 사내 게시판에 회사 비전을 발표하면서 ‘보도와 경영의 분리’를 다짐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보도국 부장·팀장 인사를 단행했다. 노종면 노조위원장은 “흔히 말하는 소원 수리 절차를 밟지 않았고, 당사자에게 전달하지도 않은 채 단행한 경영진 차원의 인사였다”며 “경영진의 독단적인 인사 개입은 공정보도에 대한 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9월26일 민주당이 국정감사에서 구본홍 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YTN에서 내보내려 하자 경영 쪽 간부들이 ‘구본홍 사장’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한 것도 기사에 대한 개입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월급 장난’은 그의 인격을 의심케하는 대목이다. 8월22일 노조원들이 출근을 저지하자 구본홍 사장은 “사장실 안에 도장이 있으니 사장실에 들어가 직인을 찍어야만 월급이 나온다”고 버티고 나섰다. 사장실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모든 결재를 처리해왔던 구 사장이, 유독 월급 결재는 사장실에서 하겠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조합원들은 “월급 가지고 장난한다”고 냉소했다. 또 출근 저지 투쟁 초기에 노조원들에게 반말을 하고, 노조원 개개인을 가리키며 “○○○씨, 말 그렇게 함부로 하는 것 아냐. 내가 다 기억하고 있어”라는 식으로 말한 것도 조합원들을 자극했다.

주총 현장을 지휘하던 그 선배

YTN 구성원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믿었던 선배들의 배신이다. 박소정 기자는 “지난여름 사옥 앞에서 시민들과 함께 낙하산 사장 반대 촛불집회를 하는데, 뒤에서 과거 정치부장으로 함께 일했던 선배가 디지털카메라로 채증을 하고 있어 허탈했다. 합리적인데다 일도 잘했기 때문에 신망이 높았고 개인적으로 잘해주던 선배였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김명우 앵커는 7월17일 40초 만에 사장 임명안이 날치기 통과되던 주총 현장을 지휘하는 ㅈ선배를 보고 깜짝 놀랐다.

“편집부에서 함께 일해본 ㅈ선배는 판단력이 빠르고 능력이 탁월해 존경하는 선배였어요. 주총장에서 용역들을 진두지휘하면서 후배들에게 ‘나가라’고 소리치고 있더군요. 저도 한편으로 놀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게 간단한 싸움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른바 ‘불량 간부’에 대한 문제의식도 심화됐다. 우장균 기자는 “구본홍 사장의 또 다른 문제는 일부 간부들과 지나치게 밀착돼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국장급들은 구본홍 체제에 올인하면서, 노조와 절대 협상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있다. 심지어 (노조원) 60~70명만 잘라버리면 문제가 다 해결된다고 말했다는 이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같은 갈등은 9월24~25일 징계절차에서도 표면화됐다. 인사위원회에 출석한 한 기자는 “인사위원석에 앉아 있는 ㅇ씨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물품을 방송에 내보내 ‘보직 박탈’을 받은 사람이다. 또 다른 ㅇ씨도 회사로부터 받은 징계만 3개가 넘는다”며 “그들이 내 징계를 논하는 인사위원회를 진행한다니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

이런 일들이 겹치면서 대다수 YTN 기자·노조원들은 구본홍 사장·경영진과 더이상 함께할 수 없는 선을 넘은 듯하다고 말했다. 구본홍 사장과도, 노조의 반대운동과도 거리를 두고 있는 중립적 태도의 한 기자는 “양쪽이 끝까지 버티다가, 마지막에 지는 쪽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 ‘치킨게임’ 단계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라며 “합리적인 해결책이 도출됐으면 좋겠는데 이미 그 선을 넘어버려 답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치킨게임’ 단계에 들어선 듯하다

»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 5가에 있는 YTN 본사. ‘24시간 뉴스채널’ YTN 기자들이 요즘 진짜 하루 24시간을 살고 있다.

이제 남은 길은 △구본홍씨가 노조를 굴복시키고 사장 자리에 안착하거나 △구본홍 사장과 노조가 어떤 식으로건 타협하거나 △구본홍씨가 사퇴하는 세 갈래뿐이다. 어떤 식으로 정리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노조원들의 기세가 전혀 수그러들지 않고 있지만, 정권 또한 쉽게 양보할 리 없기 때문이다. YTN 사장 임명은 방송 장악과 민영화라는 흐름의 교두보다.

어떤 결론이 나든 YTN의 기나긴 낙하산 사장 반대 운동은 언론사에 남을 것이다.

“1986년 대학(서울대 정치학과) 4학년 때 독도로 졸업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당시 출발 직전에 독도경비대 위문금을 마련한다며 과 선배들을 만나러 돌아다녔는데 MBC를 찾아가 황선필·이수정 선배를 만난 기억이 납니다. 각각 사장과 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두 분 모두 청와대 대변인을 하다가 그 자리로 옮겨온 사람들이었죠. 그때야 청와대 대변인 하다가 방송사 사장·부사장 되는 게 가능했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22년이 지난 지금, 대선 후보 특보를 MBC 사장으로 보내는 것은 언감생심 생각도 못할 일이잖습니까. 이는 MBC 노조가 그런 부당한 처사에 열심히 투쟁해온 결과입니다. 그러니 MBC 출신인 구본홍씨를 MBC에 못 보내고, 쉬워 보이는 YTN에 보낸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흐름에서 보자면 우리 노조의 투쟁은 이미 승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선례를 만든 만큼 앞으로 어느 정권도 함부로 대통령 특보 출신을 사장으로 보낼 수 없지 않겠냐는 거죠. 설령 대화를 통해 구본홍씨가 들어오더라도 노조는 싸움에서 진 것이 아니고, 올바른 투쟁의 역사를 만들고 보여준 겁니다.”

우장균 기자의 말이다. 그는 형사고소와 인사위원회 회부, 그리고 인사 조처까지 당해 ‘3관왕’에 올랐다. 가치와 신념을 지키기 위한 투쟁은 늘 이런 비싼 대가와 함께한다.

황혜경(27살·2006년 입사) 사회부 기자는 노조 게시판에 이렇게 썼다. “사장실을 취재하려던 <오마이뉴스> 기자를 보도국장 선배가 떠밀며 말했다. ‘나도 기자생활 20년 넘게 했다. 여기는 공공장소가 아니다. 우리가 <오마이뉴스> 오연호 사장실을 취재하려고 하면 되겠느냐? 저널리즘의 기본도 모르냐.’ 나는 항상 선배들로부터 기자는 국민의 눈과 귀요 입이기 때문에 꿀려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선배나 부장이나 국장에게도 ‘님’자를 붙이지 말라고 제일 먼저 배웠다. 취재를 위해서라면 회사 안방 사장실은 물론이고, 한밤중에 주인없는 한 생명이 흉기로 난자당해 목숨을 잃은 지하 단칸방 창문도 몰래 열어젖히고, 판사들만 다니는 비밀통로에 잠입해 재판정 뒷문으로 ‘귀대기’(몰래 엿듣는 취재)를 하고, 투신 자살한 고등학생 빈소에 찾아갔다가 아이 친구들 수십 명에 둘러싸여 오만 가지 욕을 먹기도 했다. 그게 옳다고 믿었고, 얼마 안되는 기간이지만 그렇게 일해왔는데 그렇게 취재하면 안되는 것이었습니까.”

기자생활 3년차, 노조의 막내 기수 황혜경 기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 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이렇게 YTN 기자들이 취재 이외의 것을 고민하고 싸우는 사이 ‘겨울같은’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이들의 겨울은 언제 끝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