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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청소년 그 후(9.26)한겨레21


[촛불 청소년, 그 후] 촛불세대, 일상의 촛불화 [2008.09.26 제728호]
[기획] 6월14일 ‘촛불집회 참가 중고생 333명 조사’에 이은 2차 조사…
중고생 112명이 말한 ‘촛불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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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청소년을 과연 바꾸었을까? <한겨레21>은 고려대 사회학과 김철규 교수 연구팀(연구원 한국사회연구소 김선업 교수,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이해진 박사)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중고생 112명(중학생 32명, 고교생 80명)을 대상으로 8월20~26일 전자우편을 통해 제2차 청소년 여론조사를 벌였다. <한겨레21>은 이미 6월14일 서울시청 앞 광장 촛불집회 현장에서 중고생 333명을 대상으로 1차 면접조사를 벌인 바 있다.(716호 특집-‘10대는 이명박 정부 향한 분노 때문에 촛불을 켰다’ 참조) 이번 2차조사는 1차조사에 참여한 333명에게 전자우편으로 질문지를 보내 응답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1차조사 당시에 활활 타올랐던 촛불의 기세는 꺾였다. 시간이 흐른 지금, 촛불이 점화한 기억은 어떻게 남았을까?

» 촛불의 불길은 청소년이 당겼다. 촛불집회에 참가해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청소년들(왼쪽). 청소년 행동의 날에 모여 든 이들(오른쪽 위). 경찰이 여고생 두 명을 연행하려 하자 놀라서 눈물 짓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한겨레 김진수·한겨레 강재훈 기자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22.6% “경찰진압 우려” 발길 돌려

우선 촛불집회에 계속해서 참여했는지를 물었다. 39.3%(44명)가 ‘6월14일 집회 이후에 다시 참여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60.7%(68명)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주관식으로 ‘몇 차례나 참여했느냐’고 물었는데, “36번”부터 “1번”까지 다양한 응답이 나왔다. 참여층 중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라고 응답한 사람도 적지 않아 촛불집회 열성 참여층이 형성됐음을 증명했다.(그래프1 참고) 한편 계속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촛불집회에 대한 불신이 다수는 아니었다. 계속 참여하지 않은 이유를 두가지만 고르라는 설문에서 ‘점차 집회가 순수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서’는 28.0%(26명)에 그친 반면에 ‘학업 등으로 생활이 바빠서’(74.2%·69명)가 다수를 차지했다. 그리고 ‘경찰의 강제진압에 대한 우려 때문에’라고 응답한 비율이 22.6%(21명)에 이르러 경찰의 진압방식이 청소년의 집회참가에 실질적인 위축을 불러왔음을 드러냈다. 비록 개인적인 이유 등으로 직접 참여하지는 못해도 관심은 여전했다. ‘현재 촛불집회에 대해서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느냐’는 질문에 ‘관심이 매우 크다’(15.5%·17명), ‘관심이 큰 편이다’(39.1%·43명)라는 응답이 과반을 넘어선 반면에 ‘관심이 별로 없는 편이다’(10.0%·11명), ‘관심이 거의 없다’(2.7%·3명)는 소수에 그쳤다.

그리고 다수는 여전히 촛불집회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촛불집회에서 제기됐던 미국산 수입 쇠고기의 위험성(광우병 위험성)에 대해선 여전히 ‘매우 타당했다’(40.7%·46명), ‘대체로 타당했다’(46.0%·52명)는 응답이 ‘과장된 측면이 많았다’(10.6%), 매우 과장됐다(2.7%·3명)보다 훨씬 많았다. 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요구에 대해서도 ‘정당했다’는 응답이 77.0%(87명)에 이르렀다.(‘매우 정당했다’ 43.4%, ‘대체로 정당했다’ 33.6%) 그리고 전면 재협상이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의 정권 퇴진요구에 대해서도 75.9%(85명)가 ‘정당했다’고 응답했다.(‘매우 정당했다’ 34.8%, ‘대체로 정당했다’ 41.1%) 이러한 평가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고 있다’는 질문에 압도적 다수인 66명이 ‘매우 그렇다’, 29명이 ‘대체로 그렇다’고 응답했다. ‘매우 그렇지 않다’(2명), ‘대체로 그렇지 않다’(2명)는 응답은 소수에 그쳤다.

한편 촛불집회 성과에 대해선 찬반이 엇갈렸다. ‘대체로 성공적이었지만 당초 목적에 미흡한 부분도 많다’(50.5%·55명)는 긍정적 응답과 ‘당초 목적에 비추어 미흡한 측면이 더 많다’(38.5%·42명)는 부정적 응답이 교차했다. 이어 촛불집회의 대표적 성과로 ‘국민들이 민주적 힘을 결집하는데 성공했다’(69.4%·77명)가 꼽힌 반면에 촛불집회가 미흡했던 이유로는 ‘정부가 여전히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기 때문에’(64.8%·70명)가 지적됐다. 요컨대 촛불집회 정당성에 대해선 여전히 수긍하지만, 촛불집회를 통한 현실 변화에 대해선 벽을 느꼈다는 것이다.

촛불은 청소년을 진보적 입장으로 바꾸었다. ‘촛불집회 참여 이전에 비해서 정치적 견해가 어떻게 바뀌었냐’는 질문에 47.3%(53명)가 ‘보다 진보적이 되었다’고 응답했고, 이어 ‘비슷하다’(46.4%·52명), ‘보다 보수적이 되었다’(6.3%·7명) 순서였다.(그래프2 참조) 촛불집회 이후에 사회단체나 정치적 모임(인터넷 카페 포함)에 새로 가입했다는 청소년도 33.3%(37명)로 상당수에 이르렀다. ‘촛불집회 참여 이전에 비해 친구와 정치적 대화를 얼마나 하느냐’는 질문에 과반이 넘는 59.3%(67명)가 ‘자주 한다’고 응답했고, 72.6%(82명)는 ‘촛불집회 반대자들과 토론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결과는 촛불집회가 청소년의 일상을 정치화시켰음을 드러낸다.


» 촛불집회 설문 표

47.3% “보다 진보적이 되었다”

나아가 지지정당의 변화도 나타났다. ‘촛불집회 참여 이전에 지지정당이 없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72.6%(82명)였으나 촛불집회 참여 이후엔 그 비율이 60.7%(68명)로 줄었다. 대신에 진보신당 지지자는 촛불집회 이전에 3명(2.7%)에서 이후엔 19명(17.0%)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민주노동당 지지자도 9명(8.0%)에서 14명(12.5%)으로 늘었으나 한나라당 지지자는 6명(5.3%)에서 3명(2.7%)로 줄었으며 민주당 지지자는 3명(2.7%)으로 변화가 없었다. 이렇게 여론조사 대상인 청소년 가운데 진보신당 지지율이 가장 높았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10대로서 기억은 어떨까. ‘10대의 주장과 활동을 잘 반영했다’는 질문에 과반인 51.8%(57명)가 동의한 반면에 ‘10대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바뀐 것이 별로 없다’는 응답도 54.5%(60명)에 이르러, 촛불집회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촛불세대’로서 정치적 자심감도 엿보인다. ‘촛불집회가 나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에 대해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이 59.1%(65명)에 이르렀고, ‘10대도 어른들 못지 않게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세대다’(동의 83.7%·93명), ‘촛불집회에 참여한 10대들은 ‘우리’라는 느낌을 공유하고 있다’(동의 77.1%·84명)는 응답도 아주 높았다. 이렇게 촛불집회는 청소년의 생애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촛불집회는 민주주의 발전을 가져올 것이다’에 대해서도 여전히 동의하는 비율(76.8%·85명)이 높았지만 ‘촛불집회의 성격이 처음보다 순수하지 못해졌다고 생각한다’에 동의하는 비율도 42.8%(58명)에 이르러 상당히 높았다. 처음보다 순수하지 못해진 이유로는 ‘경찰의 진압과 시위가 폭력화돼서’(64.5%·40명)가 압도적 다수로 꼽혔고 ‘쇠고기 문제 이외의 문제들이 제기돼서’(14.5%·9명) 등이 뒤를 이었다. 이어 최근 촛불집회 참가자 대량 연행의 원인에 대해선 ‘경찰의 지나친 진압’(51.4%·55명)을 꼽는 대답이 ‘경찰의 진압과 참가자들의 폭력시위 둘 다 원인’(35.5%·38명)이라는 대답보다 많았다. 양비론 보다는 경찰의 책임론에 가까운 응답이다.

이처럼 경찰의 강경진압이 촛불집회의 순수성을 훼손했다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촛불집회 자체의 비폭력성에 대해서도 1차조사보다 비판적 의견이 많았다. 1차조사에서 ‘촛불집회는 비폭력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응답은 93.4%에 이르렀으나 실제 평가를 물은 2차조사에서 ‘촛불집회는 비폭력적으로 진행됐다’에 동의하는 비율 37.8%(42명)과 동의하지 않는 비율 37.8%(42명)이 팽팽하게 맞섰다. 촛불집회의 비폭력 고수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경찰의 강경진압과 일부 참가자들의 강경대응이 폭력에 민감한 청소년들의 촛불집회 참가 입지를 좁혔음을 드러낸다.

» 촛불집회 설문 그래프

한겨레>MBC>KBS>경향 순으로 신뢰

촛불집회 순수성과 비폭력성에 대한 이런 엇갈린 평가는 정부와 미국에 대한 태도가 1차조사에 견줘 약간 보수화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1차조사(6월14일)에 견줘 2차조사(8월20~26일)에선 이명박 정부와 미국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조금 약해졌다.(표1 참조) 그러나 교육 문제, 공기업 민영화 등에 관한 촛불집회가 벌어질 경우에 참여할 의사는 여전히 과반을 넘어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표2) 이해진 박사는 “정부와 미국에 대해 ‘매우 비판적’ 의견이 조금 줄어든만큼 ‘대체로 비판적’ 의견이 늘어난 것은 촛불집회의 정점을 지나서 차분한 판단을 하게 되면서 나온 결과로 이들의 성향이 이성적 판단으로 오히려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티 조중동’ 세대로 부를 만한 촛불 청소년은 여전히 미디어에 관심 높다. 설문에 응한 청소년들은 ‘촛불집회 반대자들이 촛불집회를 반대하게 되는 이유’로 ‘조중동 등 보수매체의 영향 때문에’(33.6%·37명)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들에게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후에 가장 신뢰하게 된 언론은 <한겨레>(56.6%), <문화방송>(28.3%), <한국방송>(6.6%), <경향신문>(4.7%) 순서였다. 반면에 불신하게 된 언론으론 <조선일보>(53.8%)), <중앙일보>(21.7%), <동아일보>(8.5%) 등이 꼽혔다. 미디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고 조중동 반대여론이 뜨거웠던 촛불집회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결과다.

이렇게 촛불이 점화한 변화의 열기는 청소년의 일상에서 계속된다. 김철규 교수는 “촛불집회에 매일 참석할만큼 적극적인 참여층, 관심이 있지만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소극적인 참여만 하는 그룹, 촛불집회에 실망하면서 멀어지는 청소년 등 대략 세가지 부류로 분화가 나타났다”며 “지속적인 참여층의 경우엔 주변의 사람들과 정치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사회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등 뚜렷한 변화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김철규 교수팀은 앞으로 촛불 청소년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조사를 실시해 촛불집회가 이들 세대에 끼친 영향을 추적할 계획이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