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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스크랩/촛불 탄압 일지

"전경 구해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아" (10.2)오마이뉴스


"전경 구해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아"
[인터뷰] 무전기 탈취범으로 체포됐던 '촛불예비군' 차정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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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6일 밤 서울 종로 보신각 네거리에서 '미친소 미친교육 반대! 이명박 심판! 제80차 집중촛불문화제'에 참석한 누리꾼과 시민들이 가두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경찰 진압이 시작되자 예비군들이 스크럼을 짜고 시민들을 보호하고 있다.
ⓒ 권우성
예비군

"프락치로 오해받으면서 고립된 전경을 구해줬는데, 그 전경 대원이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지난 8월 30일 서울 신림사거리에서 벌어진 촛불 시위 과정에서 전경으로부터 무전기를 탈취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던 '예비군 부대' 차정현씨는 1일 저녁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서울 관악경찰서에 '무전기 탈취 및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가 이날 저녁 7시 45분께 풀려났다. 전경대원의 진술 외에 다른 증거가 없자 경찰은 불구속 수사를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차씨는 "당시 전경이 시민들로부터 둘러싸인 것을 발견하고 (예비군부대 행동원칙대로) '때리지 마라'며 시민들과 전경을 떼어놓으려고 애썼다"며 "그러나 사람들로부터 '빠져라, 꺼져라' 욕만 먹고 돌아섰다"고 말했다.

 

그는 "건물 안에 고립된 전경을 찾아가 예비군 상의로 덮어씌운 후 경찰 본대로 돌려보냈다"며 "당시 이 대원은 mp3플레이어를 뺐겼다고 했지, 무전기를 뺐겼다고 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차씨는 "대질심문 과정에서 그 전경은 내가 자신을 도와줬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무전기를 탈취했다고 주장했다"며 "내가 '마지막에 나를 착각하는 것 아니냐, 어떻게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 있냐'고 말했는데 그는 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고 전했다.

 

차씨에 따르면 경찰은 30일 압수수색을 하면서 "무전기를 탈취하는 너를 찍은 영상이 있다, 경찰서에 가서 확인하자"고 말했지만 실제 그런 영상은 없었다. "누구한테 무전기를 넘겼나, 누가 무전기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고 추궁하는 등 '다른 사람을 불어라'는 식의 수사를 진행했다. 

 

함께 연행됐던 일반시민 송아무개(22)씨 역시 "처음엔 무전기 탈취범으로 나를 지목했다가 이후 차씨를 지목하는 등 전경 진술이 일관되지 못했다"며 "경찰은 내게 '예비군이 선동했냐, 차씨를 알고 있냐' 등 질문을 하며 '예비군부대'에 대해 수사를 펼쳤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차씨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욕하면서 집안 뒤집은 경찰 "넌 이제 순수하지 않다"

 

  
지난 9월 30일 무전기 탈취 및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체포됐던 차정현(26)씨. 차씨는 경찰이 '예비군부대'가 시위를 주동한 것이 아닌지 추궁했다고 했다.
ⓒ 이경태
예비군부대

- 연행 당시 상황을 설명해달라.

"9월 30일 아침 집에 있는데 누군가 차를 빼달라며 찾아왔다. 문을 열어주니 경찰이었다. 갑자기 체포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제시하고 집을 뒤지기 시작했다."

 

- 압수수색 당시 무전기를 찾는다고 했나.

"온갖 욕을 다 하면서 무전기를 내놓으라고 했다. 침대도 뒤집고 서랍장도 엎어가며 했다. 집안이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 전에 촛불집회에 참가했다가 연행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집에 찾아온 형사들이 '네가 처음에 예비군 군복을 입고 (촛불집회에) 참가했을 땐 순수했을진 몰라도 이제는 아니다'고 윽박질렀다. 이미 내가 예비군 부대로 활동한 것까지 파악한 상태였다."

 

- 경찰이 3일간 집 앞에서 잠복했다던데.

"3일 동안 여자친구 집에 있어서 경찰이 기다리는지 몰랐다. 수사 때 내가 청담동 식당에 들어간 것부터 해서 3일간 동선을 보여주면서, 나를 기다렸다고 했다. 차라리 소환장을 보내지 왜 3일간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지은 죄가 없으니 떳떳하게 조사에 응할 수 있었다."

 

- 지난 8월 30일 집회 상황을 다시 설명해달라.

"당시 강남에서 모이기로 했던 사람들이 신림사거리로 이동했다. 나는 늦게 신림사거리부터 집회에 참가했는데 이미 사람들이 많이 흥분한 상태였다. 전경이 시민들로부터 둘러싸인 것을 발견하고 (예비군부대 행동원칙대로) '때리지 마라'며 시민들과 전경을 떼어놓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사람들로부터 '빠져라, 꺼져라' 욕만 먹고 돌아섰다. 이후 건물 안에 전경 한 명이 고립돼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옆에 있던 예비군의 상의를 빌려 전경에 덮어씌운 후 경찰 본대로 돌려보냈다."

 

- 당시 본대로 돌아간 기동대원이 차씨가 무전기를 탈취했다고 지목했는데.

"그 전경이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격이다. 시민들이 경찰을 보호하는 예비군부대한테 불만이 높은 상황에서도 그를 돌려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칫 잘못하면 경찰 '프락치'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연행되면서 그 친구를 찾아달라고 계속 요구했다. 그 친구만 찾으면 내 무죄가 입증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 그를 돌려보내면서 '시민들이 흥분해서 그렇지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최대한 말릴테니 나중에 너도 진압할 때 시민들 너무 때리지 말라'고 부탁까지 했다. 또 '뭐 뺏긴 것 없냐'고 물었더니 mp3플레이어를 뺐겼다고 했지, 무전기를 뺐겼다고 하진 않았다. 경찰은 내게 채증사진(당시 차씨는 두건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을 들이대며 '웃기지 마라, 마스크까지 한 네가 무슨 경찰을 도와줬다고 그러냐'고 믿지 않았다."

 

"무죄 증명해줄 줄 알았던 기동대원이... 내 눈 못 마주치더라"

 

- 그 기동대원과의 대질심문이 이뤄졌나?

"이뤄졌다. 얼굴을 보니 알겠더라. '이 친구가 내 무죄를 증명해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고립된 경찰을 도와줬다는 진술까지는 인정했는데 내가 무전기를 탈취했다고 하는 것이다. 너무 놀랐다. 내가 '나를 착각하는 것 아니냐, 어떻게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 있냐'고 말하니까 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 경찰이 그 기동대원의 진술 외에 따로 확보한 증거가 없었나.

"압수수색 당시에는 '무전기를 탈취하는 너를 찍은 영상이 있다, 경찰서에 가서 확인하자'고 말했다. '내가 한 적도 없는 일이 촬영됐을 리 없다'면서 항의했다. 실제로 수사 때 그런 영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 현장에 내가 있던 채증사진이 있었는데 집회에 내가 참가했다는 것만 알 수 있었지 무전기 탈취라든지 경찰 폭행 등의 사진은 없었다."

 

 

  
미국산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장관고시에 반대하는 시민, 학생들이 지난 6월 26일 새벽 서울 신문로에서 청와대로 가기 위해 시위를 벌이던 중 한 예비군이 경찰에 강제연행되고 있다.
ⓒ 권우성
한미 쇠고기 협상

- 이후 경찰의 수사 내용이 달라졌나?

"오늘(1일)부터 질문 내용이 달라졌다. 지난 30일에는 '무전기 내놔라'는 식이었는데 이제 '누구한테 무전기를 넘겼나, 누가 무전기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고 추궁했다. 내가 무전기를 빼앗아서 남에게 넘겼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질문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반박하자, 수사 형사가 '나는 네가 말하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 처음에 그렇게 질문한 것'이라며 '원칙적으론 네가 남에게 줬다고 말하려고 했다'고 했다.

 

나도 몰랐는데 '다음 아고라' 자유게시판에 누군가가 '무전기를 탈취해서 (연행된)사람들이랑 맞바꾸자'는 내용의 글을 올렸나보다. 형사가 그 글을 내놓으며 '이 사람을 아느냐, 예비군부대가 조직적으로 계획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했다. 마치 네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분명히 있다, 네가 혐의를 벗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오라는 뉘앙스였다."

 

- '예비군부대'에 대한 수사도 이뤄졌나.

"주로 '어떻게 연락을 주고 받느냐, 공지는 어떻게 하냐, 예비군이 시위를 선동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 (송씨에게) 수사과정에서 무전기 탈취에 대해 수사 받았나.

"처음에는 그랬다. 그런데 의경이 차씨를 무전기 탈취범으로 지목하면서 나에 대한 수사는 전경에 대한 폭행으로 바뀌었다. 의경이 내가 자신의 배를 차고 주먹을 휘둘러 자신을 때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적이 없다."

 

- 다른 증거가 있었나.

"오직 그 의경의 진술 뿐이다. 채증사진이 하나 있었는데 시위현장에 있었다는 사진 밖에 없다. 내겐 '배후가 누구냐, 예비군이 시위를 선동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내게 했다. 마치 예비군부대가 시위주동자인 것을 의심하는 것 같았다."